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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호 조각가, 서사조각의 잉태 자연 상실의 시대 바람을 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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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교 작성일19-08-2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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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준호 조각가   
[경북신문=서인교기자] 경북신문이 영남의 예술가 회원 작가들의 근황과 작품세계를 살펴본다. 여섯 번째인 방준호 조각가. 방 작가는 나무를 소재로 세찬 바람과 싸워가며 인고의 작품을 잉태시키고 있다.
 
  ◆ 바람과 함께 하고 있는 방준호 작가 작품의 시발점은?

  작가의 작업실은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 있다. 한쪽으로는 국도가 나있어서 연신 차들이 내달리고, 반대편에는 샛강을 끼고 흐르는 산으로 가로 막힌 사이에 작업실이 위치해 있다. 실제로 지세가 골짜기에 해당되는 곳이어서 내달리는 차와 함께 바람이 거센 편이다. 작가는 이처럼 예사롭지 않은 곳에서 바람에 민감한 돌조각을 하고 있었다.

  돌조각을 하는 내내 풀풀 날리는 먼지가 그곳이 다름 아닌 바람이 드센 곳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작가는 돌을 소재로 바람을 조각하고 있었고, 먼지를 조각하고 있었다.
                     ↑↑ 방준호 조각가가 바람과 먼지 속에 작업하고 있는 모습   
◆ 방 작가와 바람

  바람은 실체가 없다. 바람은 어떤 매개에 의해서만 실재할 수 있고, 매개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가 있다. 바로 가시와 비가시의 문제이며, 가시적인 것을 통해서 비가시적인 것을 암시하는, 그리고 그렇게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의 층위로 불러내는 기술을 의미하는 예술의 존재 이유와도 통한다.

  작가의 경우 매개에 해당하고 가시에 해당하는 것은 나무다. 대개는 한쪽으로 휘는 나무를 매개로 그 자체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바람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외관상 나무를 소재로 한 작가의 조각은 사실은 그 이면에서 바람의 형상을 조각하고 있었고 바람의 소리를 조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작가는 휘는 나무를 매개로 바람의 형태를 암시하고 있었고 바람의 소리를 암시하고 있었다.

  바람에 휘는 나무는 언제 어떻게 작가의 조각 속으로 들어왔고, 또한 그 속엔 어떤 의미심장한 의미라도 탑재돼 있는 것일까. 언젠가 작가는 작업실에서 드센 바람에 미친 듯이 흔들리는 나무를 보았고, 종래에는 한쪽으로 흐르듯이 휘는 나무를 보았다. 그리고 그 꼴이 꼭 자기를 보는 듯했다. 바로 나무는 자신이었고, 바람은 세상이었다.
                     ↑↑ Dream.2400x400x1500mm.  wood+bronze+acrylic paint   
◆ 방준호 작가의 작품세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자연현상에 맞닥트렸을 때 인간에게 일어나는 감정이 바로 숭고다.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래서 오히려 더 자연이 여전히 신비주의의 대상이며 경외감의 대상으로서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숭고의 감정 때문이다. 그렇게 작가는 바람에 휘는 나무를 조각하고 있었고, 나무를 휘게 만드는 바람을 조각하고 있었다. 바람에 휘는 나무를 매개로 사실은 삶을 조각하고 있었고, 사실상 자연을 상실한 시대에 자연에 대한 숭고의 감정이며 경외감을 조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작가의 조각에 등장하는 나무는 작가 자신을 상징하고, 나무들은 사람들을 상징한다. 바람에 휘는 나무에서 불현듯 자기 자신을 발견한 것에서도 엿볼 수 있듯 작가의 작업은 비록 작가 개인의 자의식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한편으로 이처럼 바람에 휘는 나무와 세파에 내던져진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비단 작가만은 아니란 점에서 보편성을 획득하고 쉽게 공감을 얻는다.

  그렇게 작가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이면서 어느 정도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로 서사조각이다. 그 속에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조각이다. 그렇다면 작가의 조각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 Wind, 2500x700x1600mm. 화강석   
◆ 바람과 나무로 잉태된 방준호 작품

  이처럼 바람에 휘는 나무를 소재로 한 작가의 조각은 서사조각으로 그리고 풍경조각으로 범주화된다. 비록 그 내용이 세파에 맞서는 존재며 존재의 원형을 향한 그리움, 그리고 저마다의 고독과 독대하는 존재와 같은 다소간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담고 있지만 정작 실제의 조각으로 나타난 형태를 보면 부드럽고 우호적이고 서정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에다 덧붙이자면 개념미술과 설치미술(옷을 표백하고 박제화 하는 과정을 통해 옷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기호의 실체를 다룬), 행위예술(자신을 살아있는 조각으로 제시한)과 대지예술(논밭을 차광막으로 덮씌운)마저 종횡해온 그동안의 작업에서 예술과 삶과의 상호내포적인 관계(예술이 삶이고 삶이 곧 예술이라는)에 대한 일관된 관심과 치열한 형식실험의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런 조각(삶의 실재를 서정적인 질료 속에 함축해낸)도 가능해지지 않았나 싶다.
서인교   sing43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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